빚진자의 삶

터미널 입구에서 티격대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빚진자 이다.
한 사람은 빌려준자이다.
빚진자는 상대에게 아무말이 없다.
그저 '10일 안에 갚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그 말 뿐이다.
빌려준 자는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당장 내놔라, 그럴수가 있느냐'
심지어 몸수색까지 하더니 카드 하나를 발견하고 비밀번호를 말하라 한다.
더 이상 보고있기 민망해 자리를 피했지만 많은 생각이 오고간다.

어디 빚진자가 그 사람뿐이랴.
너도나도 우리 모두 빚진자의 인생이다.
부모님은 날 낳아 길러주시고 먹여주시고 입혀주셨기에 나는 당신들께 빚진자이다.
방금도 터미널까지 배웅해 준 친구는 누가 그랬던가 인생 소풍길의 길동무이기에 빚진자다.
얘기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
심지어 미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는 당신들께 나는 빚진자다.
기쁠 때 반겨주는 꽃 한송이가, 날오라 손짓하며 쉬어가게 하는 산천아
그대들에게도 나는 빚진자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나에게 허락하셨고 나도 허락하셨다.
예수님은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내 지은 죄를 사하셨다.

살아 살아 한 평생에 이 모든 빚을 어찌 갚으리.

그래도 살아가는 건 이 빚이 날 눌러 무거운 짐되지 아니하고,
누구하나 서로에게 빚 갚으라 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 빚이 평생의 양식되어 사랑하며 감사하니 은혜 중 은혜로다.


2001. 10. 3 구미고속버스터미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