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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전태일' 보던 날..
비오는 수요일 연인들의 한 손에는 아니나 다를까 빨간 장미 한 송이 쥐어져 있다.
장미 꽃 한송이들 너머 사람들이 모여들고 무엇인가가 펼쳐지려나 보다.
전/ 태/ 일/ ...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온 몸에 신나를 끼얹고 당겨진 불티 사이로 차갑게 식어간 한 사내 '전태일' 그를 나는 기억한다. 똑똑하지도 약삭 빠르지도 않아 남의 일을 남 일 같지않게 여기며 바보로 한 평생을 살았다는 그래서, 어쩌면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렇게도 바보였던 그.
그렇게 화염속에 싸늘히 식어간지도 벌써 30년, 지금 그를 기념하는 연극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그 틈속에 내가 있고 사람들이 몰려와 있다.
오일(닷새)장 날이면 온 동리 사람들이 몰려와 신발이며 비녀며 옷이며 생선이며 과일을 구경하고, 시장 한 켠에서는 해가 중천을 넘긴지 채 1시간도 못 지났는데 벌써 얼굴이 벌거니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아저씨들도 있다. 마냥 시골 장터같던 웅성거림은 어디가고 섬짓한 기운이 엄습하더니 사람들의 얼굴이 사뭇 단호해지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연극이라는 것을 접하고 또, 연대·투쟁·노동자·인권·죽음 이라는 눈물 샘 깊은곳에 던지워진 모난 돌들에 충혈된 눈이 내리는 비에 씻긴 내 몸떵이 만큼이나 개운하다.
'내 이름은 전태일... 내 이름은 전태일... 너도 전태일이고... 나도 전태일이고... 우리 모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지니고 그렇게 불려지는 전태일' 이라던 외침이 막을 내린 한참 후 지금도 귓가에 웅웅거린다.
동문을 나서며 이런저런 생각에 5분도 되지않는 자취방까지의 길이 한 없이 멀어진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길, 때로 그 길의 끝이 없어 보이는 길, 목적지도 종점도 없어뵈는 그 길을 순순히 묵묵히 걸어갔던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긴긴 때론, 아직도 끝나지 않은듯한 그 길의 길목에서 그렇게도 당당히 서 있었던 것일까?
나와 너 우리를 지켜주어야 할 법(法)이 때론 우리를 구속했던 억울한 역사의 현장에서 그는 무어라 외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평화시장의 하늘을 뒤 덮었던 검은 연기는 2000년 11월의 가을 하늘에도 오색 찬란한 단풍과 단식투쟁, 총파업 그리고 혁명의 붉은 깃발로 쉰 목소리의 규탄으로 남아있다?
깜깜한 골목의 끝에 서면 자연스레 지갑속으로 손이간다. 지갑 속의 대문열쇠를 찾고 보이지않는 열쇠구멍에 맞추어 삐익소리 내르라 족히 1분은 고생하리라. 어느 새 다다른 녹색의 자취방 대문 '어라 오늘은 열려있군!' 지갑이 든 바지 뒷 주머니로 가던 손이 멈칫한다. 이것도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고 일탈이라면 맞을까보다.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허우적 대는 손 짓 입 놀림을 가만두고 멍하니 앉았다.
15살 채 되지않는 어린 시다들에게 건냈던 풀 빵... 각혈 때문에 해고 당했던 미싱사, 그녀가 이제는 몸 파는 여자로... 10 여년을 지내오면서도 그네들의 이름은 식모, 3번 시다, 1번 미싱사...
방금 넘어간 밥 덩이가 채 소화되지 않은 것들 때문일까 매일 지나다니던 위 속을 비집고 들 틈이 없어 목구멍으로 되레 토하려 한다. 그래도 한 술 더 떠서 입안에 넣고 꼭꼭 싶어 다시 넘기고 물 한잔으로 그것들을 억지로 밀어넣고는 일어나 잠든다.
30년 전의 검은 연기를 지금에와 신자유주의 분쇄로 물들인다는 것은 어째 어색한 색칠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머리속을 스쳐지나 가는...
하~ 푸~ 하~ 푸~
2000. 11. 첫째날 (비 오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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