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그래도 꿈꾸어야 한다"고 말해 주십시오.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박시현


요즘은 고민이 많다. 아마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졸업을 앞둔 나를 자신도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하늘은 푸르고 높고 햇살은 따사로와 한번쯤은 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힘차게 내달려 보고 싶은 가을날에 어찌보면 청승맞고 안타까운 고민일 수도 있겠다.
그런 얼마전 참으로 기분좋고 힘이나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꿈꾸어야 하지 않겠니"

벌써 1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사회복지정보원에서 실시하는 복지순례에 일원으로 참석해 8월의 무더위도 망각한 채 전국을 누비던 때가 말이다.
80여개의 전국 사회복지 기관과 시설 혹은 관련단체를 방문하고 30여회의 현장선생님들과 교수님들로부터의 특강을 들었는가 하면, 남으로는 땅끝마을과 마라도를 동으로는 호미곷, 북으로는 통일전망대 서로는 장봉도 등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사회복지의 꿈과 열정으로! 힘찬 구호로 시작된 하루하루는 나를 포함한 70여명의 동료학우들이 사회복지에 대한 비젼과 열정을 품고 또 서로 지지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복지순례 동안 이어진 기관방문과 특강 속에서 '사회복지란 저런 거구나' 무지했던 내 모습을 깨닫고, '사회복지 저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감탄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며, '아 저건 꼭 해보고 싶다' 가슴속에 소중히 품었던 생각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기대가 너무 컷 던 탓일까? 품은 비젼이 정말 꿈이라는 이상에 불과한 것들이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와 공부를 하고 현장에 계신 선배들을 만나면서 지난여름 내가 품었던 꿈에 대한 끝없는 되물음이 시작되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현장의 선배들을 만나면 때때로 무르익는 대화 속에 가끔 그 때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 속에 소중하게 품었던 꿈들을 풀어 보이기도 한다.
신이나 구슬 땀을 이마에 얹고 다니던 그 때를 기억하며 이야기꾼이 보따리를 풀어헤치듯 술술술...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나면 선배들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국사회복지계의 현실과 사회복지 현장의 어려움, 사회복지 조직내 사회복지사의 위치와 역할 등을 상기시키신다. 다시말해, 내가 배우고 느끼고 품었던 꿈들은 지금 현실에서는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모두 맞는 말씀이고 옳은 말씀이다. 그것은 굳이 현장에 몸담고 있지않은 학생의 신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시기에 드러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들의 노고와 현실, 때론 죽음에 직면하는 안타까운 사건들, 그리고 때때로 학교를 찾아 술로 이야기로 자신의 고민을 전하는 선배들의 한숨과 술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격차(gap)라고 표현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과 현실을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이런 선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의 대화 끝에 나의 꿈이 파도에 씻겨가는 모래성 마냥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기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제 졸업을 하면 현장으로 간다. 아니, 가고 싶다.
벌써부터 괜한 걱정에 휩싸인다. 이런 고민 끝에 찾아간 한 선배의 말은 그 동안 무너져 내린 나의 꿈들이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인 바다에 녹아 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1)
염려와 불안이 섞인 나의 고민에 여느 선배들처럼 현실과 현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나의 모래성은 또 다시 씻겨 가는가?
하지만, 그 뒤에 던져진 선배의 한마디! "시현아 그래도 꿈꾸어야 하지 않겠니"
현실이 어떠하든 우리는 끝없이 꿈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망과 한탄 때로 분노와 절망이 사회복지 현장과 현실 속에 있다 하더라도 꿈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질 수 있는 꿈조차 없다면 그것은 지금의 어떤 것보다도 더 절망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그때서야 느낄 수 있었다.
선배들이 토로한 많은 어려움! 그것들 모두 참된 것이며, 단지 '꿈꾸어라'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일 뿐 모두의 마음속에 각자의 꿈이 있다는 것을...

요즘 마르크스 평전을 읽고 있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헤겔은 역사를 수평적인 면과 수직적인 면이라는 두 차원에서 생각했다. 수평적 차원에서는 상이한 활동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각 시기에 그 나름의 개별적이고 '유기적'이며 뚜렷하게 독자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어떤 단일한 패턴에 따라 폭넓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수직적인 차원에서는, 여러 사건들의 동일한 단면이 발전과정의 필연적 단계이자 시간적 연속의 일부로, 또한 시간상 그에 선행하는 단계에 의해 어떤 의미에서는 억제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시간상 선행하는 단계는 비록 덜 발전된 상태로이기는 해도 나름대로의 경향과 힘들을 이미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경향과 힘들이 완전히 발현됨으로써 출현하는 시대는 애초에 선행 단계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으로 간주된다. 』2)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시간상 선행되는 단계의 오늘 혹은 과거는 다음에 출현하는 새 시대에 이미 잠재되어 드러나는 내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 단계는 매우 중요하며 의미 있다.

선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다. (감히)
'현실을 직시하라', '현장은 이렇다'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 주실 때 덧붙여 '그래도 꿈꾸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들은 과거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 오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미래 모습 속에 잠재할 과거의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모리의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1998. 10
2)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Berlin, Sir Isaiah/ 2001. 08